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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4일 1800시, 3천여 병력을 앞세운 버마 정부군이 땅거미 지는 모에이강 물돌이 목을 치고 들어왔다. 폭 60m에 친 3겹 철책선에서 불꽃이 튀었다. 500m 앞 케블루산(400m) 정부군 고지에서는 120㎜ 야포 24문이 쉬지 않고 불을 뿜었다. 스웨덴제 84㎜ 대탱크포는 모래자루와 통나무로 덮은 지하 2m 동맹군 벙커를 뚫고 들었다. 남북 1.5㎞, 동서 0.6㎞, 손바닥만한 물돌이는 초토가 되었다.
12월25일 0400시, 자정을 넘어 숨죽였던 물돌이에 다시 총성이 울렸다. 캡틴흘라웨이다리 쪽으로 치고 들던 정부군 상륙조 40여명이 동맹군에 걸려 물귀신이 되었다. 흥분한 정부군 야포는 거칠게 불을 뿜었고 물돌이의 새벽은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로 뒤덮였다. 1700시, 300여명 전사자를 낸 정부군이 물러나면서 전선이 잦아들었다.”
꼬무라로 가는 길
세계 게릴라전사에 최대 격전으로 꼽을만한 1988년 ‘크리스마스전투’였다. 그즈음 타이와 버마(까렌주) 국경을 가르는 모에이강 물돌이 꼬무라(완카)에는 까렌민족해방군(KNLA) 101특수대대 300명, 4여단 특수지원군 150명, 아라깐해방군(ALA) 80명,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211연대 150명이 버마민주동맹(DAB) 깃발 아래 방어선을 쳤다. 여섯 달 넘도록 꼬무라를 난타했던 정부군은 12월22일부터 하루 5000~7000발에 이르는 포탄을 퍼부어댔다. 12월 들어 보급선마저 끊긴 동맹군은 햇볕도 들지 않는 벙커에서 한 달 가까이 마른 국수와 물로 끼니를 때웠다.
특히 이 크리스마스전투는 11월5일 갓 태어나 전투 경험도 없던 버마학생민주전선 학생군이 까렌 지도부의 후퇴 명령을 거부한 채 쇠사슬로 서로 발을 묶고 참전한 신화를 남겼다. 그로부터 까렌을 비롯한 소수민족해방군들은 이른바 8888 민주항쟁 뒤 국경으로 빠져나온 학생들을 동지로 받아들이며 무기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난공불락 요새로 여겼던 꼬무라는 1995년 2월20일 정부군한테 함락 당했다. 그날 나는 타이 국경 수비대에 막혀 모에이강 둑 먼발치에서 쓰러져 가는 꼬무라를 지켜보았다. 그동안 꼬무라 지하 벙커를 들락거린 유일한 기자인 나는 검은 연기와 불길에 휩싸여 숨이 넘어가던 그날 꼬무라를 아직도 가슴 한 쪽에 달고 산다.